(광의면 동네작가 김태연) [구례 라이프] 귀촌인의 의욕 없는평범한 일상에 동기부여 끼얹기, 시골의 문화생활이란.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2023-10-04 15:00 조회 : 12


내가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다가온다.

대낮에는 아직도 우렁찬 매미소리와 30도를 웃도는 강한 햇볕으로 선크림을

단단히 발라야 하지만 아침저녁 창밖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과

그에 실려 오는 가을 숲 냄새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가을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렇다,

시골에서 가을에는 수확할 거리가 많아서 먹거리가 다양해진다는 사실.

올해는 게으른 농부 콘셉트로 자연농법으로 우리 텃밭을 가꿨더랬다.

그러다가 참다 참다 너무 자란 잡초에 처음으로 T는 제초제를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인간아 마스크 좀 끼고 하자. 사진 몇 장 찍다가 잔소리 씨게 해대고는 창문을 쾅 닫아 버렸다.

설거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그릇에 질색하는 사람이 생명체를 죽이는 독한

화학약품에의 노출에 한없이 관대한 부조리한 모습. 유기농, 친환경에 대한 도시인의 집착,

그런데 친환경이니 당연히 벌레가 붙어 있을 시판 채소에는 관대하지 못하는 부조리.

올해 전국으로 살인진드기가 극성이었고 T는 쯔쯔가무시에 걸려 죽다가 살아 났다.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는 약도 좀 쳐야 한다. 하나의 논리와 설명으로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에 좀 관대해지기.

나이가 들면서 단정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

한때 확신의 아이콘이었던 퍼스트펭귄은 나를 인내해주고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는

자들에게 경외와 관대를 베풀기로 했다. T 너도 포함해서...

구례읍에 사시는 시아버지께서 점심을 사주시겠단다.

내가 바빠서 옆 마을에 살면서도 근래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소고기를 사주시겠다니 거부할 수 없는 미끼이다.

모시러 간 시아버지 집 마당에는 석류가 열렸다.

작년에는 주렁주렁 열렸는데 해걸이 중인지 올해는 딱 하나 달렸다ㅜㅜ

시아버지 집 마당의 단감이 참 달고 맛있는데 마찬가지로 작년 대비 듬성듬성이다.

시아버지 집 마당에 사는 강아지. 이름 없는 시골 개.

처음에는 엄청 짖지만 한번 만져주면 금방 배를 까 뒤집고 만져달라고 온갖 애교를 부린다.

화면을 뚫고 나오는 흥분 상태 ㅋ 암놈인데 우리 집에서 자라는

수놈 진돗개 동이와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구례 내려와서 그 심하던 개털 알레르기가 많이 없어졌다.

개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잘된 일이다.

도서관에 갔다.

구례의 조선시대 대표 지식인이자 애국지사, 매천 황현을 기리는 매천 도서관

도서관 입구의 북쉼터 공간. 시골의 도서관들은 어디든 시설도 깔끔하고

이용객도 많이 없는 편이라 상당히 쾌적하다.

한정현 작가의 마고. 미 군정기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린 추리소설을 모방한 사회물

얼마 전까지 정지아 글쓰기 수업을 듣던 다목적실.

토요일에 열려서 다행히 참석 가능한 재택근무자.

사실 몇 가지 질문을 생각해두긴 했는데 말씀 중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조언도 해주시고 반복되는

역사, 개인적 의견도 솔직하게 공유해 주셔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흥미진진한 시간이 되었다.

한정현 작가님!

2시간 가까운 작가님과의 만남의 시간. 작가님들은 대부분 상당한 달변가들이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하는 듯.

작가님은 토요일 오후 2시라는 황금 시간에 왜 자신을 만나러

도서관에 왔는지 매우 궁금해하셨다.

서울이라면 이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보통 차로 1시간은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구례에서는 이런 행사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

참가자도 많지 않을 테니 티케팅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글쓰기가 취미인 사람에게 흥미롭게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마침 한참 동기부여가 안되어 글쓰기가 답보 중인데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일요일 오전 10시에는 9월 9일부터 열리는 구례 아이언맨 철인 3종 국제경기의

자원봉사 사전 교육이 있어서 구례 공설 운동장에 다녀왔다.

구례 아이언맨이 열리는 산동의 구례 오토캠핑장에 대한 장소와

담당할 업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나의 업무는 선수들의 탈의실 관리와 통역이다.

남자는 9백 명, 여자는 백 명 넘는 선수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내가 맡은 시간은 오후 시간대. 수영을 마치고 사이클링복으로 환복하는 과정에서

탈의실에서 옷도 벗겨주고 바셀린과 에어파스를 바르는 것도 도와주고 짐 정리도 해야 한다.

2015년 뉴질랜드 아이언맨 경기 당시 영상을 봤다.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과 한밤중 피니시 라인에 도착한 선수들의 울컥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몰려왔다.

올해 첫 하프마라톤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결승점에서 흘리는 눈물은 어떠한 클리쉐한 표현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뭔가 초인간적이며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자원봉사자 업무를 듣고 유니폼과 모자를 받아서 귀가했다.

9월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 통역과 탈의실 지원 자원봉사를 담당할 예정이다.

자원봉사 경험이 거의 전무후무한 내가 구례까지 내려와서 국제경기에

자원봉사를 경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요즘 마라톤 연습도 그렇고 의욕이 좀 없는 상태인데 동기부여로 이만한 것이 없을 듯 하다.

T가 참여했던 초보 목공 수업 중 스스로 제작했던 주방 수납장은

마지막 니스 칠을 마치고 우리 집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에고야... 주방 창문턱에 맞췄는데 키는 그 사이 어떻게 더 커졌냐?...

문과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내가 잘못이지만 완성도가 생각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자질구레하게는 밥솥 놓는 공간 뒤쪽으로 콘센트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던가...

그래그래 이만하면 잘했어, T!!!

이번 여름 이모작에 성공한 듯한 옥수수.

한여름에 관리하며 키운 옥수수보다 초가을 옥수수는 굵기도 얇을 뿐더러

더이상 커지지도 않고 있다. 수확 시기를 몰라서 어제 조심스레 몇 개만

삶아 보니 그 맛은 크게 다름이 없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왜 이리 많은지...내 식탐은 별다른 동기부여가 필요 없다는 게 함정.

옥수수 몇 개나 딸 수 있으려나... 내 다이어트는 또 이렇게 실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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