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의면 동네작가 김태연) [구례 라이프] 바쁜 한주를 보낸 퍼스트펭귄의 주간 귀촌 일기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2023-09-07 15:02 조회 : 8


무더위가 꺾이려나 소나기가 요 며칠 연거푸 내리더니 여름은 다시 원래 기온을 되찾았다.

아껴 신는 비싼 구두 밑창이 쩌억 달라붙을 정도로 뜨거워진 아스팔트 길 위,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외근용 가방으로 막으며 서초 빌딩 사이를 씩씩하게 걷던 나는

올해에는 창문 밖에서 들리는 울창한 매미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시골의 여름을 만끽하는 중이다.

지리산과 섬진강 풍경을 아침저녁으로 보고 느끼며 사는 귀촌인은 이보다 더 평안한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피부질환으로 고생 중이다.

이웃에게 소개 받은 유명 순천 피부과를 다녀온 후 먹고 발라야 하는 약만 한 보따리 얻어 왔다.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

다이어트는 모다? 그렇지, 내일부터!

금주란 모다? 병원 다녀온 다음날부터!

꽝꽝 얼린 얼음에 하이볼 스타일로 목이 긴 잔에 잔뜩 붓고 내가 좋아하는 (주로 살 안 찔 거 같은)

안주들로 세팅해서 밀린 넷플리스 보기. 이보다 더 완벽한 휴식은 없다.

이 한 캔을 끝으로 한동안 금주 예정이다.

재택근무를 위해 별도로 홈 오피스라고 꾸민 건 없다.

하루 종일 모니터와 씨름하며 업무로 답답해지면 마당으로 나가 주인집 진돗개 동이와 조금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운 좋게 멋진 일몰의 순간을 목격하기도 한다.

로맨틱! 옥수수! 성공적!!!

올해에는 유달리 호박이 잘 열리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T가 이웃 선생님께 늦은 봄에 얻어온 모종 3개를 마당 곳곳에 심어 두고 바나나 껍질이며 이것저것

음식 쓰레기로 거름을 주고 돌보았다. 왜 우리 밭에만 호박이 안 열리지??

아침저녁으로 호박 덩굴을 헤치며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호박은 어느 날 갑자기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식구가 둘 뿐인데 이걸 어쩐다.

나눔 할 때가 제일 조심스럽다. 다행히 호박을 반기는 이웃이 몇 분 계셨다.

그중 한 분은 우리 귀촌 센터 동기 선생님...

주인 없는 집에 불쑥 들어갔더니 병방 마을 못난이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온다.

어, 주인 없고 호박은 툇마루에 두고 가!

왕년 이 동네 ***어 드셨던 못난이는 얼굴 전체에 영광의 상처투성이이다.

이날 유달리 애교가 많았다. 더 놀아주고 싶었지만 들를 곳이 많았다.

동네 한 바퀴 순시하고 간식 준비.

금주를 하다 보니 술안주 하려고 사두었던 모차렐라 치즈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텃밭에서 방울토마토와 바질 잎 뜯어서 견과류와 꿀, 올리브오일 넣고 쉐킷쉐킷!

다행히 치즈 맛은 이상이 없다. 알록달록하게 매칭 한 음식을 보면 이상하게 힐링 된다.

요즘 감사 기간이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미팅이 많이 잡혀 있다.

올빼미과이지만 늦은 시간 업무에는 잠이 마구 쏟아진다.

외국계 15년 근무하면서 그렇게 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이메일을 그만큼 썼으면 영어가 쏼라쏼라가 되어야 하는데

기억력 감퇴와 표현의 한계로 매번 좌절감을 느낀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거 보면 타고나길 언어 감각은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하긴 국어를 너무 못해서 이과에 갔으니까...

미팅이 끝나면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상당해서 다음날 오전까지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는다.

영어를 얼마큼 더 공부해야 하는 걸까...?살짝 우울감이 몰려오면 그 자리를 식탐이란 녀석이 대차게 차지한다.

나의 올해 원픽 요리는요? 두구 두구 두구 둑..... 콩국수 되겠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 파전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자체 금주 중이라 막걸리 노노.

비 오는 날에 손님들이 따뜻한 국수 위주로 선택하다 보니 당일 갈아둔 콩물은 오늘 소진이 안될 듯하다.

사장님께서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이만큼 챙겨 주셨다.

헐, 내가 콩국수 귀신인 걸 어찌 아시고. 이날 콩국수 먹고 집에 와서 간식으로 콩물 먹고 저녁 디저트로

설탕 타서 또 콩물 마시고. 물만 먹었는데 지금도 생각난다.

그릇 갖다 드릴 핑계로 조만간 또 가야겠다.

비가 또 오려나보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섬진강에서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오면 다 내려놓고 푹 쉬고 싶어진다.

무더위 아니면 소나기로 8월에는 실내에서만 달렸다.

런데이앱 데이터를 보니 주 4회로 꾸준히 달리긴 했네.

일단 10월 초 하프마라톤 가신청을 하긴 했는데 그때까지 5kg 더 감량하지 못하면 하프 마라톤은 포기할 예정이다.

무릎과 고관절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달리지 않기로 했다.

영어 공부나 달리기나 노력 대비 아웃풋이 심하게 좋지 않은 편이다.

매일 꾸준하게 하다 보면 러닝 커브가 생겨야 하는데 나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다시 좌절감에 우울증이 살짝 오려고 하니 단체 카톡이 왔다.

정지아 글쓰기 수업 때 열심히 썼던 글들이 드디어 책으로 출간된다고 한다.

바쁘신 와중에도 우리 글 교정해 주신 작가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책이지만 그래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내 이름으로 된 책 출간에는 어느 정도 가까운 성과이다.

인구 2만의 이곳 구례, 작은 시골로 내려온 지 어느덧 1년 조금 넘었다.

서울에서는 누리기 힘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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